큐티나눔터

17-01-14 14:36

선입견과 자존심에 대해

kihyock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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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먹고 선입견을 버리고 자존심을 내려놓기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요한복음 4:43~44)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생초보 찾는이 보다 기독교에 대해 알만큼 아는 사람들의 회심이 어렵습니다. 그 패러다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을 전도하기는 그래서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치다꺼리 해줘야 하는 아들, , 밉상 언니, 오빠, 누가,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따르는 예수의 상 안에는 내가 만든 선입견이 여전할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의 여인을 대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내게 문화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늘 이 말씀을 오가다 자주 들었던 탓에 별 감흥 없이 지나치곤 했습니다. 내 곁에 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예수처럼 이 여인을 가까이 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편이 5명이나 있었던 여자, 그리고 지금도 남편 아닌 다른 사람과 살고 있는 여자, 본인도 다른 사람의 이목이 두려워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한 낯 뙤약볕에 물을 길러 다니는 여자. 속된 말로 헤픈여자. 예수는 이런 여자의 삶에 꼬여있는 죄에 대해 지적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녀 안에 있었던 타는 듯한 목마름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런 여자가 교회에 있을 때, 동성애자가 교회안에 있을 때 예수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나의 태도는 얼마나 다를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너희들은 표적과 기사가 아니면 도무지 믿지를 않는다.” 제법 자존심 상할 만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절박함 가운데 있던 왕의 신하에게는 별 중요한 말씀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아직 우리 안에 자존심이 드글드글 굴러다니고 있다면 우리는 절박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길게 생각해 보면 인생의 어려움 만큼 우리의 영원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절박함 가운데 있지 않는 사람은, 아직 살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 앞에서 자존심을 구기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의 찌르는 말을 피해 멀리멀리 달아나고 싶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로부터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천국의 사냥개처럼 나를 추적하시고 덫을 놓으셔서 나를 다시 소환하셨던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내 알량한 자존심을 늘 내려놓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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