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터

17-01-25 08:09

두려움을 넘어 실존의 문제를 직시하고 진실 앞에 서기

kihyock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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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먹고 진실을 대면하기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을 보고서, 그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요한복음 7:7)

 

 

 

형님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그렇게 잘 났으면 떳떳하게 행동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싸인에 따라 움직이는 예수님의 모습은 동생들에게 조차도 일상적이지 않게 보였던 것입니다. 유대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고서는 잠시 후에 유대로 다시 올라가십니다. 뉴스에 보니 예전 박근혜 대통령의 이상한 행동의 이유가 최순실이라는 퍼즐조각 때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이상 행동의 배후에 최순실이라는 퍼즐조각을 끼워넣으니 그 행동들의 이유가 제대로 설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신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셨던 것입니다. 내 삶은 하나님이라는 퍼즐조각 없이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내 삶에서 하나님이라는 조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의 삶은 너무도 세상을 닮아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예수께 대하여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못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C. S. 루이스 <예기치 않은 기쁨>에는 그의 회심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무신론자로써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그는 결국 자신이 다니던 학교 기숙사 방 코너에 몰려 회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진실한 구도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무신론에서 찾았던 것은 절망과 부조리함이었습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을 찾았지만, 날마다 진실하게 나의 내면을 직면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속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자신의 길을 찾으려면 반드시 무작위적인 제1 원인을 깨우쳐야 하고, 도덕을 비난하는 짓은 모두 부도덕하다고 비난해야 하며, 모든 무의미함을 의미 있게 표현해야 하고, 희망이 없는 가운데 안전을 찾아야만 한다. 내가 언제나 다른 무엇보다 원했던 바는 간섭받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 영혼을 내 것이라 부르기를 원했었다. 나는 기쁨을 얻는 쪽보다는 고통을 피하는 쪽을 훨씬 더 간절히 원했다. 언제나 유한책임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 내가 하던 일에서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을라치면, 그토록 간절하게 피하고 싶었던 그분이 꾸준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모들린 대학의 그 방에 혼자 있던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가? 내가 너무나도 두려워했던 그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았다. 1929년 세 번째 학기에 나는 드디어 항복했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날 밤의 나는 온 영국을 통틀어 가장 맥 빠진 개종자, 내키지 않는 개종자였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선명해 보이는 그것이 그때 내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조건으로도 회심자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말이다!

 

-      C. S. 루이스 [예기치 못한 기쁨] 중에서

 

 

 

자신의 실존에 절망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내 삶이 사용되길 소망하는 아침입니다. 

 

명절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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