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터

17-02-14 08:46

주님의 타이밍은 내 타이밍과는 다르다

kihyock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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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먹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기

 

 

 

어떤 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의 동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였다.(요한복음 11:1)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좀 더 친숙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결혼보다는 장례에 대한 소식들이 더 눈에 띄고 잘 들립니다. 장례식에 갈 일과 병원에 갈 일이 더 많아집니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다행입니다. 육신은 쇄하며 점점 죽음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장차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는 다른 패러다임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십니다. 살아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의 쓴 맛을 보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일 따름입니다.

 

 

 

한 편 예수님의 말씀은, 부활의 능력이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한 복판에서 누려야 되는 것임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마지막 때를 소망하니라 오늘 내 삶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이미와 아직의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직장, 가정, 교회가 내 삶의 주 동선을 이루고 있는데 정신없이 살다보면 지극히 내 중심적으로 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상대방의 관점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게 내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 주님의 타이밍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반면 주님의 움직임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늘 초조함에 휩싸입니다. 손톱을 물어뜯고 발을 동동구르게 됩니다. 마리아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주님께서 나사로에 집에 있었다면 병든 나사로가 죽지 않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보다 놀라운 일을 보여주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자신이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란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이벤트는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사로를 살리신 이 놀라운 일을 나를 위해 보여주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내게 절실히 필요한 믿음입니다. 내 눈에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아 보이고, 하는 일은 종종 엉망진창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마리아처럼 주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거침없는 신뢰로 엉망진창처럼 보이는 내 삶을 가지고 놀라운 일을 보이실 그분을 기대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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