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터

17-04-07 08:47

기도가 힘들다

kihyock35
댓글 0

도시락 먹고 예수님처럼 기도하기

 

 

 

나는 그들을 위하여 빕니다. 내가 세상을 위하여 비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빕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요한복음 17:9)

 

 

 

나의 신앙의 여정에 이정표처럼 박아 놓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도끼가 무딘데도 그 날을 갈지 않고 쓰면, 힘이 더 든다. 그러나 지혜는 사람을 성공하도록 돕는다.”(전도서 10:10)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예레미야 12:5)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린도전서 10:12)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딤후 3:14)

 

 

 

스스로 나타해지려고 하거나 느슨해 지려고 할 때 이런 말씀들을 떠올리며 다시 자세를 다 잡는 것입니다.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는 은혜의 방편 중 내게는 기도에 대한 부분이 가장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일단 들으시는 분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더러 나는 소리를 내서 내 의사를 표시해도 상대방으로부터 내 귀에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응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읽고 있는데 5장에는 어린양이 아무도 뗄 수 없었던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어린양 앞에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가 엎드리는데 그들이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히 담긴 금대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을 읽어보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우리가 보내는 이메일이나 택배처럼 상대방에게 도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열심으로 중보하시는 모습은 기도를 주로 효용성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나의 생각을 뒤집어 엎습니다. 매 순간에 주님께서도 기도에 전념할 필요가 있으셨다면 내게는 더욱 그리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요한이 미리 본 것이라면 그 스물네 장로가 들고 있던 금대접 속 기도들 가운데 내 기도도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있고 스팸메일이나 수신거부 메일처럼 받지 않으시는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본을 따라 그 기도를 배워나가야 됨을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오늘도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위로 가기